새 옷을 입고
본문: 골로새서 3:10-14
의식주는 인간이 생존해 가는 데 필수적인 3가지 기본 요소입니다. 그런데 식, 주는 모든 동물에게 필요한 것인데 옷은 인간에게만 필요한 것입니다. 언제부터 옷이 시작되었을까? 옷의 주름 사이에 서식하는 옷니의 유전 혈통을 연구하여서 2011년 국제학술지 ‘분자생물학과 진화’에 발표되었습니다. 최소 8만3천년, 최대 17만년 전부터 옷을 입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또 하나의 연구는 동물 가죽을 벗기는 도구로 사용한 동물 뼈를 추적하는 것입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연구진이 주축이 되어 콩트르방디에 동굴에서 약 12만년 전 옷을 만드는 데 쓴 것으로 추정되는 뼈 도구가 발견되었습니다. 왜 옷을 만들었나요? 추위 보호를 위하여 만들었다고 생각하였는데 2만 5천년전 레스퓌그의 비너스 상을 보면 엉덩이 밑에 걸쳐져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장식이 목적이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성서에도 옷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힙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채색옷을 입힙니다. 제사장의 옷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신분을 나타내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자기 신분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을수가 없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의 군복을 사양합니다. 자신의 신분은 세상의 군인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이름으로 전쟁에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골로새 교인들에게 바울은 어떤 신분을 강조하고 있나요? 하나님이 택하고,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입니다. 골로새 교회 안에는 이방인 크리스챤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할례로 고민하는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차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헬라인 유대인 (인종에 따라), 할례파 무할례파 (율법에 따라), 종과 자유인 (직업종류에 따라) 그리고 야만인과 스구디아인 (문명의 정도에 따라)으로 구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옷을 입어야 합니까?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참음, 용서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여기에 “사랑이 더해지면.” 이것으로 “매는 띠”(쉰데스모스) 는 쉰 (더불어)와 데오(묶다) 즉 함께 묶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온전하게 매는 띠”즉 “하나님 보시기에 완벽한 공동체”란 말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벗다’의 의미속에 십자가 의미가 있습니다. ‘입다’의 의미속에는 부활, 즉 생명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옛 사람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주는 나의 피난처'라는 책을 쓴 코리텐붐 여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도저히 용서가 안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던 것도 모든 것을 벗은 것입니다. 주님만이 완전한 옷을 입은 자입니다. 대림절 기간 그분을 보면서 새로운 옷을 입는 기간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