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을 따라』
찬 양 찬양 2곡
신앙고백 다같이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찬 송 295장 – 큰 죄에 빠진 나를
대표기도 정해진 순서에 따라 기도
말 씀 갈라디아서 4:21-28
갈라디아서 4:21–28 (NKRV)
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 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오늘의 키포인트 –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하여 듣고 약속을 따라 견디고 버티는 자로 살아갑시다.
말씀 나누기
지난주에 군산에 방문하며 겪은 일입니다. 세미나를 마치고 점심식사장소로 이동하는데 그 지역 출신 목사님이 이곳 지리를 잘 안다고 하며 차를 빌려타고 식사장소로 갔습니다. 식당이름이 ‘청사초롱’이었는데 도착해보니 술집이어서 잘못 왔나보다 하고 검색해서 다른 청사초롱에 가보니 횟집이었습니다. 어렵게 차를 주차하고 들어갔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행사를 진행하시는 분에게 전화를 해보니 주소를 보내주어 40분만에 식사장소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해보니 식사는 이미 끝나가고 있었고 더 속상한 것은 처음 출발했던 곳에서 3분도 되지 않는 거리였습니다. 문제는 설명을 끝까지 잘 듣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안내하시는 분은 분명히 “청사초롱 소바”라고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첫부분만 듣고 청사초롱을 찾아갔습니다. 더구나 이곳 지리를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별일 없을거라고 판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사건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고 자기 생각대로 하다가 이리 저리 돌고 돌아 늦게 도착하고 안해도 될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쓸모없는 고생을 하지 않으려면 안내자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의 삶에도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납니다. 자기 생각대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있고 말씀대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갈라디아 교회도 그렇습니다. 바울은 자기 생각대로 신앙생활 하는 자들은 다른 복음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에서 벗어나 자기 생각대로, 거짓 형제들의 꾀임에 빠져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을 따라 사는 신앙생활이고 초등학문에 묶여 있는 신앙생활입니다. 이것은 눈에 보입니다.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쉽게 빠져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빠져나올수 있도록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을 위해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아들을 비유(파라볼레)로 들어 설명해 줍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람은 75세 사래는 65세였습니다. 이미 단산된 상태였지만 하나님이 분명히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믿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10년이 흘러도 자녀가 생기지 않자 사래는 첩(하갈)을 통해서 자녀를 낳도록 아브람을 권합니다. 그렇게 얻은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고 기다림이 세월이 계속 흘러갈 때 아브람과 사래는 초조하고 불안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당시 통용되던 방법을 썼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가정의 다툼과 분열이었습니다. 아이를 임신하자 여종(하갈)은 여주인을 멸시했고 가정에 갈등과 분열이 생겼습니다. 24년의 세월이 흐르고 아브람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고 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통해서 아들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사실 아브람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약속대로 하면 아브람은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다만 할례를 행하라고 하십니다. 할례는 죽음을 상징합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죽어야 하지만 작은 포피를 베어냄으로 죽음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훗날 세례가 됩니다. 할례를 행하고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뀝니다. 사래의 이름도 사라로 바꿔주십니다. 그리고 1년후 이삭이 태어납니다. 이삭은 약속을 따라 낳은 자녀입니다. 이미 죽은자와 다름 없던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주신 아들 이삭을 보며 이들은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음을 다시 확인합니다.
이 장면을 창세기21장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여기서 반복되는 문구는 “말씀하신대로”입니다. 사라가 아들을 낳을 수 있었던 것은 인간적인 방법이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따라갔을 때”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떠나 다른 복음, 곧 할례를 따라가고, 율법을 따라가고 있는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약속을 따라 갈때에 우리가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된다” 라고 분명히 교훈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갔습니다. 모리아 산에서 칼로 이삭을 치려 할 때 하나님께서 막아 서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산, 모리아산은 훗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곳, 골고다 언덕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바로 오지 않을 때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우리도 답답하고 불안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때때로 견디고 버텨야 할 때도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믿음을 가리키는 단어는 ‘에무나’입니다. 이것은 “견디다 버티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믿음은 견디고 버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무나가 변형되어 아멘이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아멘! 이라고 외치는 것은 약속을 따라 버티겠습니다. 약속을 믿고 견디겠습니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때로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사는 것이 불안하고 미련해 보여도 말씀을 붙잡고 견디고 버티며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은혜를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적용 - 삶 나누기
안내사항을 잘못 들어서 헤메거나 고생한 기억이 있으면 구역 식구들과 이야기 해 봅시다.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내가 지금 견디고 버티고 있는(에무나) 것이 있는지 이야기 해 봅시다.
중보기도
1. 하나님과 동행하며 말씀으로 신앙의 깊이가 더해가는 한 해가 되게 하소서
2. 교회의 모든 부서와 모든 성도들의 삶 속에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결실을 보게 하소서
3. 교회 안에 성령 충만의 역사와 능력이 나타나게 하시고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 되게 하소서
4. 질병으로 고통받는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 받는 은혜가 임하게 하소서
봉헌찬송 오소서 진리의 성령님 봉헌기도 인도자 주기도문으로 구역예배를 마치겠습니다.